한시감상 - 내 마음 환한 달빛 /이만부
  • 작성일 2018.09.09
  • 작성자 이종문
  • 조회수 963

 

 

내 마음 환한 달빛 李萬敷(이만부)

 

 

이 달이 항상 떠서 나의 창을 지켜주니

달그림자 맑을 때는

호롱불도 껐었다오

 

달이 만약 여러분의 책상 위를 비추거든

내 마음 그 환한 달빛,

그걸 알아주시게나

 

此月常來守我窓(차월상래수아창)

有時淸影廢油缸(유시청영폐유항)

若逢月往諸公案(약봉월왕제공안)

知我心如此月光(지아심여차월광)

 

 

  17321217, 조선후기의 큰 학자 식산(息山) 이만부(李萬敷:1664-1732) 선생은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. 그는 집안사람들과 작별을 하고, 자손들에게도 마지막 훈계를 했다. 실오라기 같은 목숨이 아슬아슬하게 붙어 있는 상황이었지만, 모시고 있는 제자들에게도 최후의 가르침을 베풀었다. 식산은 제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 세상을 떠나고 싶다면서 집안 부녀자들을 모두 물러가게 하고는 오현도(五賢圖)를 펼치게 했다. 그가 일생 동안 마음으로 받들어 왔던 주자(朱子) 등 다섯 분의 현인을 그린 그림이었다. 식산은 그 다섯 현인들에게 눈물을 흘리면서 하직의 인사를 올렸다. 잠시 후에 그는 이 지상 세계의 마지막 일로 칠언절구(七言絶句) 한 수를 지었다. 다음날 아침 방을 청소하고 이부자리를 정돈하게 한 뒤 문득 훌훌 세상을 떠났다.

 

  위의 작품은 식산이 죽음을 눈앞에 두고 최후로 읊었다는 바로 그 시다. 그 때 창밖에는 보름을 막 지난 둥근 달이 두리둥실 떠 있었다. 일생동안 가난한 선비의 창을 환하게 비춰주던 달, 그는 그 환한 달빛이 비칠 때마다 호롱불을 끈 채 그 맑은 달빛에 목욕을 했다. 그와 같은 세월이 쌓여가는 동안 그의 마음도 점점 환한 달빛을 닮아갔다. 이러다가 어쩌면 죽은 뒤에 저 휘영청 밝은 달이 될지도 모르겠다. 그리하여 마침내 그는 죽음을 바로 눈앞에 두고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한다. “달이 만약 여러분의 책상 위를 비추거든/ 내 마음 그 환한 달빛, 그걸 알아주시게나.” 이토록 서늘하고도 가슴이 뭉클한 시를 남기고 이 세상을 떠날 수 있는 사람, 그런 사람은 인생을 정말 멋지고 행복하게 살았다고 해도 좋을 게다.

 

  전등은 나가고 훤한 달빛만이 영창에 어리는 외로운 밤이다. 무심히 머리맡의 조약돌을 만져본다.... 이 세상을 떠날 때 누추하고 꼴사나운 시체를 남에게 보이고 싶지 않다. 이불 속에 이 돌 하나만 남겨놓고 밤새 사라질 수 있다면 얼마나 가뿐하고 깨끗할까?” ‘조약돌 같은 인간을 꿈꾸었던 수필가 윤오영의 명품 수필 [조약돌]의 한 대목이다. 식산도 물론 누추하고 꼴사나운 시체를 다른 사람에게 보이고 싶지는 않았겠지만, 인간 존재의 숙명적 조건상 아마도 그럴 수는 없었을 것이다. 하지만 그가 이 세상에 마지막으로 남긴 이 한편의 시는 윤오영이 이불 속에 고이 남기고 떠나고 싶어 했던 바로 그 조약돌같은 작품이라 해도 좋을 것 같다.

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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